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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에서 피고석으로—애플이 오픈AI를 고소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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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일, 애플이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 법원에 41페이지짜리 소장을 제출했다. 피고는 오픈AI, 조니 아이브가 공동 창립한 io Products, 그리고 전직 애플 임원 두 명이다. 혐의는 영업비밀 탈취. 그것도 "조직적으로, 경영진에서 일반 직원까지 전 레벨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라고 소장은 주장한다.
아이러니한 건 불과 2년 전만 해도 두 회사는 손을 맞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2024년 WWDC에서 애플은 iOS에 챗GPT를 통합하겠다고 발표했고, 오픈AI는 시리(Siri)의 지능화를 위한 핵심 파트너로 손꼽혔다. 지금 그 파트너가 피고석에 앉아 있다.
맥북을 들고 나간 엔지니어
소장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부터 꺼내보자.
창 류(Chang Liu)는 애플에서 8년을 일한 시니어 시스템 전기 엔지니어다. 그는 2026년 1월 오픈AI로 이직하면서 회사 지급 맥북을 반납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그리고 그 맥북으로 발표 자료, 하드웨어 디자인, 제조 세부 사항, 테스트 절차 등을 오픈AI 입사 후에도 계속 다운로드했다는 게 애플의 주장이다.
노트북 하나로 회사 기밀을 통째로 들고 나간 셈인데, 솔직히 이게 가능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애플 수준의 보안 체계에서 퇴사한 직원이 회사 기기를 반납하지 않고, 그 기기로 한동안 내부 시스템에 접근을 유지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 된다. 애플이 이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는 것도 조금 의아하고.
그런데 이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면접을 가장한 첩보 활동"
탕 탄(Tang Tan)은 아이폰과 애플워치 제품 디자인을 이끈 전 부사장이다. 2024년 2월 애플을 나와 조니 아이브와 합류했고, 현재는 오픈AI의 최고 하드웨어 책임자 자리에 있다.
소장에 따르면 그는 이직 후 애플 재직 중인 지원자들을 면접할 때 독특한 방식을 활용했다. 지원자들에게 애플의 기밀 프로젝트 관련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실제 애플 하드웨어 부품과 샘플을 "show and tell" 형식으로 가져오도록 요청했다는 것이다. 면접이 곧 기밀 유출 창구였던 셈이다.
"면접 준비해서 왔더니 애플 내부 사정 캐는 자리였다"는 지원자가 나왔을 법한 상황이다. 게다가 소장은 탕 탄이 오픈AI로 이직을 준비하는 애플 직원들에게 보안 절차를 어떻게 우회할지 코칭했다는 혐의도 담고 있다.
이 정도면 기업 간 인재 영입을 넘어 조직적 첩보 활동에 가깝다.

400명이라는 숫자
소장이 언급하는 또 하나의 수치가 인상적이다. 현재 오픈AI에 근무 중인 전직 애플 임직원이 400명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400명이다. 단순히 인재를 뽑은 게 아니라 애플이라는 회사의 하드웨어 DNA를 통째로 이식하려 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규모다. 오픈AI가 만들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면 이해가 된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시작했지만, 지금 목표는 하드웨어다. "아이폰의 다음(the next iPhone)"이라고 불리는 AI 기기 생태계다.
챗GPT를 품에 안은 스마트폰, 또는 완전히 새로운 폼팩터의 AI 디바이스. 오픈AI는 조니 아이브의 io Products를 6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그 방향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그 하드웨어를 설계할 인력으로 애플 출신들을 대거 흡수했다.
애플 입장에서 이건 그냥 인재 이탈이 아니다. 차세대 제품 설계 도면까지 빠져나갈 수 있는 위험 신호다.
조니 아이브는 왜 피고가 아닌가
흥미로운 점이 있다. io Products는 피고 명단에 올랐지만, 조니 아이브 본인은 소장에 이름이 없다. 회사를 공동 창립하고 이끌어온 인물인데 정작 그 이름은 빠진 셈이다.
아이브는 아이팟, 아이폰, 맥북 에어, 아이패드 등 애플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제품들을 만든 인물이다. 그가 오픈AI와 손잡고 만들겠다는 제품이 어느 정도의 수준을 목표로 하는지는 이미 업계가 짐작하고 있다. 애플로서는 자사의 레거시를 자사에 대항하는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적의 진영에 있다는 게 더 불편할 것이다.
조니 아이브를 피고에 포함하지 않은 건 법적 전략일 수 있다. 혹은 그가 직접적인 기밀 접근 혐의에서 멀리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io Products가 피고석에 있는 이상 이 소송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파트너십이 깨진 경위
2024년에 시작된 애플-오픈AI 파트너십은 시간이 갈수록 흔들렸다. 결정적으로 2026년 초, 애플은 '애플 인텔리전스'의 파트너를 오픈AI에서 구글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유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하드웨어 영역에서의 경쟁 심화가 관계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건 이제 소장이 증명하고 있다.
오픈AI는 성명에서 "다른 회사의 영업비밀에 관심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400명의 전직 직원, 반납 안 된 맥북, 면접을 가장한 기밀 수집이라는 구체적인 혐의들을 어떻게 설명할지는 앞으로 법정에서 해명해야 한다.

'아이폰 다음'을 위한 전쟁
이 소송을 단순한 영업비밀 분쟁으로 보면 핵심을 놓친다. 본질은 차세대 컴퓨팅 폼팩터를 누가 정의할 것인가의 싸움이다.
스마트폰 시대의 중심에 아이폰이 있었다면, AI 시대의 중심 기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오픈AI는 그 기기를 만들고 싶고, 애플은 그게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소프트웨어 지능에서 하드웨어로 확장하는 경로를, 후자는 하드웨어 플랫폼 위에 AI를 얹는 경로를 걷고 있다.
내 생각엔 오픈AI의 행보가 더 공격적이다. 65억 달러를 들여 조니 아이브를 사고, 애플 출신 400명을 데려왔다는 건 그냥 "AI 기기도 한번 만들어볼까"가 아니다. 처음부터 애플의 방식으로 애플에 대항하겠다는 전략처럼 보인다.
그래서 애플의 이번 소송이 단순히 기밀 보호 차원이 아니라 선제적 견제로 해석되기도 한다. 법적 절차를 통해 오픈AI의 하드웨어 개발 속도를 늦추고, 동시에 더 이상의 인재 이탈에 경종을 울리는 이중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헤럴드경제 제목("선제 타격")이 오히려 정확할 수 있다.
결국 법정 싸움이 길어질 것이다
영업비밀 소송은 기본적으로 오래 걸린다. 무엇이 '영업비밀'인지를 증명하고, 그것이 실제로 '탈취'됐는지를 입증하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애플 측은 맥북 미반납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고, 면접 과정에서의 기밀 수집도 이메일이나 슬랙 기록 등으로 뒷받침될 가능성이 있다.
오픈AI로서는 io Products의 하드웨어 개발 일정이 이 소송으로 인해 지연되거나 제약을 받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기라도 하면 개발 중단 명령까지 이어질 수 있다.
10년 전 같은 상황이었다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인재 이동은 관행처럼 여겨졌다. 그 관행이 이제 법정으로 간다는 것은, 아이폰 다음을 둘러싼 경쟁이 그만큼 격렬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