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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짜리 조니 아이브 기기, 이름도 못 정했다 — 오픈AI io 상표권 분쟁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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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가 AI 하드웨어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하드웨어를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여러 선례가 보여줬다. 아마존 파이어폰, 구글 글래스, 마이크로소프트 밴드. 성능과 상관없이 대부분 시장에서 고전했다. 그런데 거기에 조니 아이브라는 이름이 붙으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이폰과 맥북 에어를 세상에 내놓은 그가 직접 만든다면 뭔가 다를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기대감이 좀 과했다는 생각이다.

오픈AI AI 기기 개념 이미지

65억 달러, 오픈AI 역대 최대 인수

2025년 5월, 오픈AI는 io라는 스타트업 인수를 발표했다. io는 조니 아이브가 자신의 디자인 회사 LoveFrom과 공동으로 세운 AI 기기 개발사다. 인수 금액은 65억 달러, 원화로 약 9.5조원. 오픈AI 역사상 단일 최대 규모 인수다.

발표 당시 구체적인 제품 사양은 공개되지 않았다. 화면이 없는 웨어러블 기기 형태라는 정도만 알려졌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연결되거나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 AI 음성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ambient 디바이스를 목표로 한다는 방향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쉽게 말해, 폰 없이도 챗GPT를 바로 쓸 수 있는 기기다.

조니 아이브는 1992년 애플에 합류해 27년을 몸담았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맥북 에어, 애플 워치. 현대 소비자 전자제품의 외형을 사실상 다시 쓴 사람이다. 2019년 애플을 떠나 LoveFrom을 설립했을 때도 업계가 주목했는데, 이번에 샘 올트먼과 손을 잡은 것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선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퍼지면서, 기술 업계는 "iPhone 이후 가장 중요한 기기가 나올 수 있다"는 흥분 상태였다.

상표권 소송, 첫 단추부터 삐걱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수 발표 직후, iyO라는 스타트업이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iyO는 귀에 맞춤 제작되는 인이어 AI 이어버드를 개발하는 회사다. 사명이 'io'와 발음이 사실상 동일하고, 표기도 혼동될 수 있다는 게 소송의 핵심이었다. 소비자가 iyO 제품과 오픈AI의 io 기기를 헷갈릴 수 있다는 주장이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오픈AI에게 'io' 이름을 AI 하드웨어 제품에 사용하지 말라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오픈AI 측은 즉각 항소했지만, 미국 제9 순회 항소법원에서도 기각됐다. 결론은 명확했다. 오픈AI는 어떤 철자 조합이든 'io'나 'IYO'라는 이름을 AI 하드웨어 제품 명칭, 광고, 마케팅, 판매에 사용할 수 없다.

이미 올려뒀던 홍보 영상, 소셜 미디어 게시물도 전부 삭제해야 했다. 65억 달러를 주고 인수한 회사 이름을 영구적으로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회사를 인수하기 전에 상표 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든다. 기본 중의 기본인데.

오픈AI 법적 분쟁 이미지

출시는 2027년, 포장재도 없다

이름 문제보다 더 실질적인 소식이 뒤이어 나왔다.

오픈AI 부사장이 법원에 제출한 공식 서류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첫 AI 하드웨어 기기는 2027년 2월 이전에 고객에게 출하되지 않을 것이다." 당초 업계 전망은 2026년 하반기였다. 6개월 이상 밀린 셈이다.

그것도 확정이 아니다. 같은 서류에 더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지금까지 제품 포장재도, 마케팅 자료도 제작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 가전 제품은 출시 최소 6개월 전에 패키징 디자인이 확정된다. 공장 생산 라인 준비, 물류 계획, 유통망 확보 등이 줄줄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포장재조차 없다는 건, 제품이 아직 한창 개발 중이라는 뜻이다. 2027년 2월도 낙관적인 숫자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오픈AI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하드웨어 개발은 공급망, 제조 파트너, 전파 인증, 발열 관리, 배터리 수명까지 전혀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조니 아이브가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도, 디자인과 양산은 다른 이야기다. 애플도 첫 아이폰을 만들기까지 3년이 걸렸고, 그때도 삼성 반도체와 소니 카메라 모듈이 뒷받침됐다. 오픈AI에게 그런 협력망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애플에서도 구글에 밀렸다

하드웨어가 꼬이는 동안, 기존 파트너십도 흔들렸다.

2025년 애플은 iOS 18에 챗GPT를 통합했다. 시리가 처리하기 복잡한 요청을 챗GPT로 넘기는 구조였다. 수억 명의 아이폰 사용자에게 챗GPT가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는 루트였다. 오픈AI 입장에서는 앱 설치 없이도 아이폰 사용자 전체가 잠재 고객이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2026년 1월, 애플이 구글과 다년 계약을 맺었다. 차세대 시리와 애플 파운데이션 모델의 핵심 인프라로 구글 제미나이를 채택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챗GPT가 시리의 기본 AI 자리를 잃었다.

오픈AI의 불만이 공개적으로 터져나왔다. 챗GPT가 시리를 통해 호출되는 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앱 직접 사용보다 응답 기능이 제한된다는 것이었다. "약속된 수준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나왔고, 현재 오픈AI는 계약 위반 통지를 포함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타이밍도 묘하다. 애플은 6월 8일 WWDC 2026 키노트에서 새로운 시리와 애플 인텔리전스 전략을 공개할 예정이다. 거기서 제미나이가 전면에 서는 장면을 오픈AI가 어떻게 볼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오픈AI 애플 구글 경쟁 구도

그래도 기업가치 852조

이 모든 걸 나열하면 오픈AI가 위기 같아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픈AI의 기업가치는 여전히 852조원 수준이다. 챗GPT 유료 구독자 수는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고, 기업용 API 매출도 마찬가지다. 구글 제미나이와 앤트로픽 클로드가 추격하고 있지만, 챗GPT라는 브랜드와 사용자 기반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

하드웨어 프로젝트 고전이나 애플 파트너십 균열이 핵심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이 두 사건은 오픈AI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건드리지 않는다.

문제는 방향의 선명함이다. 오픈AI는 AI API와 구독 플랫폼으로 집중할 건지, 아니면 직접 하드웨어 생태계까지 가져갈 건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있다. io 프로젝트는 후자의 신호탄이었는데,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보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보인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하드웨어를 만들겠다고 나섰다가 흐지부지된 사례는 이미 충분히 많다.

65억 달러를 들인 조니 아이브 기기의 이름은 아직 없다. 나온다면 2027년, 어떤 이름을 달고 나올지도 미지수다. 그때쯤 AI 하드웨어 시장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그리고 경쟁자들은 어디까지 와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