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ublished on
챗GPT 금지 3년 만에 전면 개방 — 삼성전자, 제미나이·클로드까지 사내 도입
- Authors
- Name
2023년 4월, 삼성전자 직원 몇 명이 챗GPT에 반도체 소스코드를 입력했다. 버그를 고치려는 의도였다. 그 코드가 오픈AI 학습 데이터로 넘어갔다. 비슷한 사고가 두 번 더 터졌다. 삼성은 같은 해 5월, 모바일·가전 전 부문에 걸쳐 외부 AI 접속을 전면 차단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는 그 문을 세 개나 동시에 열어젖혔다.
6월부터 DX(디바이스경험)부문 임직원들은 챗GPT, 구글 제미나이, 앤트로픽 클로드를 업무망에서 공식으로 쓸 수 있다. 2023년에 그렇게 서둘러 잠갔던 빗장을 이번엔 경쟁 AI 3종 패키지로 해제한 셈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사고 직후 삼성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 직원 교육도 없었고, AI 사용 가이드라인도 없었고, 보안 체계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터진 사고였다. 일단 막고 보는 게 옳았다.
문제는 AI 속도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이다. 2024년 한 해 동안 GPT-4o, 제미나이 1.5, 클로드 3이 연달아 등장했고, 2025년부터는 본격적인 에이전트 경쟁이 시작됐다. 삼성이 자체 개발하던 '삼성 가우스'는 내부 특화 업무에선 나름 쓸 만했지만, 다국어 처리·코드 생성·복잡한 추론에서 글로벌 빅테크 모델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
2025년 2월, 국내 매체가 단독으로 이걸 보도했다. "삼성전자, AI 폐쇄 전략 접는다." 공식 입장은 아니었지만, 내부에서 방향이 틀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혔다.
이후 노태문 DX부문 사장이 2026년 신년사에서 'AX(AI Transformation)'를 전면에 내세웠다. "AI를 활용해 일하는 방식과 사고를 혁신하겠다"는 발언이었는데, 솔직히 삼성 가우스만으로 AX를 달성한다는 건 수치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4~5월 두 달간 2,500명 테스트
공식 도입 전에 삼성이 거친 과정이 꽤 꼼꼼했다. 4월부터 5월까지 DX부문 임직원 2,500명을 선발해 두 달간 PoC(개념검증)를 진행했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세 모델을 실제 업무에 써보게 하고 결과를 평가받는 방식이었다.
어떤 모델이 어떤 업무에 맞는지 데이터를 축적하는 작업이었다. 마케팅·글로벌 커뮤니케이션 팀은 다국어 문서 작업에 제미나이를, 개발 직군은 클로드의 코드 이해 능력을 테스트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2,500명 규모의 파일럿은 단순 시범이 아니다. 실제 업무 환경에서 문제점을 미리 걸러낸 셈이다.
보안 조치도 달라졌다. 2023년엔 아예 막았다면, 이번엔 보안 교육을 이수한 직원에게만 사용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외부 AI에 어떤 데이터를 올리면 안 되는지, 회사 기밀이 어떤 경로로 유출될 수 있는지를 먼저 가르치고 사용 허가를 내준다.
개인적으로 이 접근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2023년 사고도 직원이 몰라서 생긴 거지, AI 기술 자체가 나빠서 생긴 게 아니었으니까. 도구는 결국 쓰는 사람 손에 달려 있다.

삼성 가우스는 어떻게 되나
삼성 가우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투트랙 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은 구조다. 내부 기밀이 오가는 연구개발(R&D), 반도체 설계, 민감한 생산 데이터 분석은 여전히 삼성 가우스로 처리한다. 외부 서버로 데이터가 나가는 구조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반면 일반 사무 업무 — 글 초안 작성, 회의록 요약, 다국어 이메일, 코드 디버깅, 시장 조사 — 에는 챗GPT·제미나이·클로드를 투입한다. 여기서 굳이 가우스를 쓸 이유가 없다.
현실적으로 맞는 선택이다. 빅테크가 수십조를 쏟아부어 만든 LLM을 자체 모델로 단기간에 따라잡기란 어렵다. 삼성이 가우스에 계속 투자해도 오픈AI, 앤트로픽 수준의 모델 성능이 나오려면 최소 수년이 걸린다. 그동안 직원들이 열등한 AI 도구로 일하게 할 이유가 없다. 반도체 회사가 직접 CPU를 만든다고 해서 인텔·AMD 서버 칩을 안 쓰는 게 아닌 것처럼, AI도 마찬가지다.
이건 삼성이 AI를 포기한 게 아니라 AI 공급망을 현실에 맞게 재편한 거라고 본다.
다음 수순은 제조 현장까지
이번 발표에서 삼성이 같이 흘린 계획이 있다. "제조 현장까지 AX 확대"라는 방향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국내외 공장을 'AI 자율공장'으로 전환하겠다는 로드맵을 갖고 있다. 디지털 트윈, AI 에이전트를 전 공정에 적용하고, 나아가 휴머노이드형 제조 로봇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DX부문 사무직의 외부 AI 도입은 그 로드맵의 첫 번째 챕터인 셈이다.
2,500명 PoC에서 쌓은 데이터와 교훈이 이후 공장 AI 전환에도 쓰인다. 어떤 업무를 AI로 자동화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하는지 — 사무직 파일럿이 이 질문에 먼저 실전 답을 내놓는 구조다.
삼성이 국내 최대 고용 기업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결정의 파급력은 단순한 사내 IT 정책을 넘어선다. 국내 기업들이 "삼성도 쓰는데"라는 명분을 얻게 됐고, 클로드·제미나이·챗GPT의 기업 영업에도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생겼다.

두 번째 사고는 없을까
솔직히 불안한 부분이 있다. 2023년 사고는 직원 세 명의 실수에서 시작됐다. 이번엔 수천, 수만 명이 외부 AI를 쓰게 된다. 보안 교육을 이수해야 쓸 수 있다지만, 교육이 모든 실수를 막아주진 않는다.
삼성이 파일럿 두 달 동안 무사히 넘어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파일럿은 선발된 집단이 진행하는 거고, 전체 직원 대상 운영은 성격이 다르다. 가이드라인 바깥의 사용 케이스, 신규 입사자, 업무 압박 상황에서의 판단 착오 — 이런 변수는 파일럿으로 다 잡아낼 수 없다.
외부 AI 업무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에서 삼성의 이번 결정은 피할 수 없는 방향이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관리다. 향후 6개월, 내부에서 두 번째 유출 사고가 터지는지가 진짜 관전 포인트다. 그게 나오면 이번엔 단순 차단으로 수습하기 어렵다.
기업 AI 도입 시대에 삼성전자가 어떤 선례를 남기게 될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