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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4 웨이퍼에 친필 서명 남긴 젠슨 황, 삼성은 HBM5로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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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텍스 2026 이틀째였던 6월 2일, 대만 타이베이 전시장에서 한 장의 사진이 국내 반도체 커뮤니티를 달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SK하이닉스 부스에 직접 나타나 HBM4E 웨이퍼에 친필로 이렇게 썼다. "Please Make More(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2GB SOCAMM2 모듈에는 "LOVE SOCAMM"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단순한 팬서비스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황 CEO가 같은 날 미디어 간담회에서 "베라 루빈 양산을 위해 지구상의 모든 공급망 리소스를 총동원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 병목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 맥락을 알면 이 서명의 의미가 달리 읽힌다.
황 CEO는 HBM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부스 방문 한 번으로 전 세계에 알린 셈이다.

SK하이닉스, 시총 1조 달러 찍고 젠슨 황과 재회
이날 SK하이닉스 부스 방문에는 특별한 맥락이 하나 더 있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CEO의 만남이 공식 일정으로 잡힌 날이기도 했다. 양사 고위 경영진이 자리한 비공개 비즈니스 미팅에서 화두는 단연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1조 달러 달성이었다.
황 CEO는 "SK하이닉스가 달성한 시총 1조 달러 기록이 무척 기쁘고 그들의 성공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GPU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 공급사가 글로벌 탑티어 기업 반열에 오른 것이니 뿌듯할 만하다. 사실 SK하이닉스 시총 1조 달러는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 없이는 불가능한 숫자였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컴퓨텍스에서 HBM3E, HBM4, HBM4E 전 라인업을 총동원해 전시했다. 차세대 AI 슈퍼컴퓨터 플랫폼 베라 루빈 200 모형 옆에 HBM4와 SOCAMM2를 배치한 구성이 눈에 띄었다. 황 CEO가 쓴 "LOVE SOCAMM"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온디바이스 AI 메모리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신호로 읽힌다.
엔비디아향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점유율은 현재 약 70%다. UBS 추정치지만, 황 CEO가 직접 부스를 찾아 웨이퍼에 서명한 행동이 이 수치의 신뢰도를 높여준다.

삼성의 카드 — HBM5 세계 최초 실물 공개
SK하이닉스가 황 CEO의 서명으로 전시장을 달구는 동안, 삼성전자는 조용히 다른 카드를 꺼냈다. 세계 최초 HBM5 실물 모형 공개다.
8세대 HBM인 HBM5는 아직 양산이 2028년 이후로 예상되는 차세대 제품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그 실물 모형을 들고 나와 컴퓨텍스 부스에 올려놨다. "우리는 이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내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는 베이스 다이 공정이다. HBM5 베이스(로직) 다이에 2나노미터 공정을 최초로 적용할 계획이다. 현재 HBM4 베이스 다이가 5nm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도약이다. 대역폭과 동작 속도가 HBM4E 대비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삼성전자는 밝혔다.
둘째는 열 관리 기술이다. 송재혁 삼성전자 DS부문 CTO 사장은 "별도의 열 전달 경로를 추가해 열 저항을 낮추고 동작 안전성을 높인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달 냉각요소를 내장한 iHBM 기술을 발표한 상황이라, 차세대 HBM 경쟁의 핵심이 발열 제어로 옮겨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면 삼성전자가 HBM4 세대에서 SK하이닉스에 크게 밀린 건 맞다. 수율 문제로 엔비디아 납품이 지연됐고, 그 사이 SK하이닉스가 독주 체제를 굳혔다. HBM5 모형을 먼저 꺼내는 건 현재의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미래 경쟁에선 뒤지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HBM4 전쟁, 삼성 반격 시작됐다
그렇다고 삼성이 지금을 포기한 건 아니다.
올해 2월 세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한 삼성은, 6월부터 엔비디아 베라 루빈용 HBM4 양산 공급에도 들어갔다.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 MI400 시리즈에서는 HBM4 주공급사로 지명됐다. 수율도 회복세다. 지난해 4분기에 50% 수준이었던 HBM4 수율이 5월 현재 60%에 육박한다.

시장 점유율 전체를 보면 그림이 좀 다르다. 2026년 HBM4 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 5455%, 삼성전자 2829%, 마이크론 17~18%로 추정된다. 엔비디아향으로만 보면 SK하이닉스 쏠림이 크지만, 삼성이 AMD 물량을 확보하면서 총량으로는 따라붙는 구조다.
개인적으로 이 구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주력 파트너로 자리잡고, 삼성이 AMD와 구글 등 나머지 수요를 흡수하면, 한국이 AI 메모리 시장 전체를 쥐는 그림이 된다. 마이크론이 17~18%를 가져가고는 있지만, AI 메모리 패권은 사실상 한국 두 회사 간의 내전이다.
젠슨 황이 웨이퍼에 "더 만들어 달라"고 서명하고, 삼성이 HBM5 모형을 꺼내는 동안, 컴퓨텍스 2026의 타이베이는 잠시 AI 메모리 전쟁의 임시 전장이 됐다. 젠슨 황은 이틀 뒤인 6월 5일 방한해 국내 그룹 총수들과 2차 '깐부 회동'을 갖는다. 서명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무대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