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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만든 앤트로픽, 삼성 파운드리에 첫 AI 칩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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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TPU를 오래전에 만들었고, 오픈AI는 지난달 자체 칩을 공개했다. 남은 건 앤트로픽뿐이었다.
그 앤트로픽이 드디어 움직였다. 클로드 개발사이자 기업가치 965억 달러(약 1,300조 원)의 앤트로픽이 자체 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협의를 시작했다고 복수의 외신이 보도했다. 파운드리 업계의 영원한 2인자 삼성이 거대 AI 랩을 연속으로 낚아채고 있다.

앤트로픽은 왜 지금 칩을 만드나
솔직히 늦은 감이 있다. 구글은 2016년부터 TPU를 자체 설계해 왔고, 아마존은 AWS 인퍼런티아를 내세워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춰왔다. 오픈AI는 올해 6월 삼성·하이닉스 메모리를 탑재한 자체 AI 칩을 공개하며 GPU 독립 선언을 했다.
앤트로픽이 이 흐름에서 혼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자체 칩이 없으면 추론 비용은 영원히 구글과 아마존의 서버 가격표에 종속된다. 클로드를 하루에 수억 건 서빙한다고 가정할 때 이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는 공개되지 않지만, 연간 수조 원 단위라는 것은 업계 상식이다.
타이밍을 가능하게 한 건 자금이다. 앤트로픽은 올해 5월 650억 달러(약 88조 원) 규모의 시리즈 H 투자를 마무리했다. 투자자 목록에 삼성전자가 들어가 있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도 함께다. 이 셋은 단순한 재무 투자자가 아니다. 앤트로픽의 AI 인프라를 함께 만들어갈 전략적 파트너로 명시됐다. 삼성이 앤트로픽에 돈을 넣은 지 두 달도 안 돼 파운드리 협의가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인재 영입도 칩 개발의 진지함을 보여준다. 앤트로픽은 오픈AI 자체 칩 팀의 초기 핵심 멤버였던 클라이브 찬을 지난달 데려왔다. 오픈AI가 자체 칩 개발의 씨앗을 심은 인물이, 이제 앤트로픽에서 같은 일을 하게 됐다.
삼성 2나노가 뭐길래
삼성이 논의 테이블에 올린 건 2나노(nm) GAA 공정, 공식 명칭으로는 SF2다.
GAA(Gate-All-Around)는 기존 핀펫 방식과 다르게 게이트가 채널을 사방에서 감싸는 구조다. 말이 어렵지만 핵심은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고, 전력 효율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AI 칩에서 전력 효율은 생사가 달린 문제다. 데이터센터 전기세가 연간 수천억 원 단위인 상황에서 칩 하나가 같은 성능에 전력을 20% 덜 쓴다면, 그 차이가 수익성에 직결된다.
앤트로픽이 삼성 공정과 함께 들여다보고 있는 건 첨단 패키징 기술이기도 하다. 메인 프로세서와 메모리 칩을 물리적으로 가깝게 배치해 데이터 이동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AI 추론 과정에서 병목은 계산보다 메모리 대역폭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 패키징 기술이 그 병목을 줄인다.

앤트로픽만이 아니다—메타도 삼성으로 왔다
동시에 메타도 삼성과 손을 잡았다. 메타의 자체 AI 가속기 MTIA 3세대부터는 기존 파트너였던 TSMC 대신 삼성 파운드리의 2나노 공정을 쓰기로 했다. 메타는 6개월 주기의 초고속 칩 개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삼성 시스템LSI 사업부와 아키텍처 설계 단계부터 공동 개발 체계를 구축했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삼성 파운드리의 중장기 수주 잔액이 5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업계 전망이 나온다. 테슬라 자율주행 칩에 이어 앤트로픽, 메타까지—AI 붐이 삼성 파운드리에게는 반전의 기회가 되고 있다.
TSMC가 여전히 애플과 엔비디아를 독점적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은 빅테크 AI 팀들의 자체 칩 욕구를 파고들고 있다. TSMC가 너무 바쁜 탓도 있다. TSMC의 공정 슬롯은 엔비디아와 애플이 꽉 채우고 있어 신규 고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다.
아직은 초기 단계, 변수가 많다
찬물을 조금 끼얹자면, 협의가 확정 수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앤트로픽은 이 칩이 어떤 연산에 최적화될지, 전력 소비 기준이 얼마인지, 서버 랙에 어떻게 통합될지조차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 명의 관계자가 더인포메이션에 밝힌 내용이다. 설계 완료, 시험 생산, 양산 수율 확보까지 통상 2~3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하면 실제 칩이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건 2028년 이후가 될 수도 있다.
삼성 파운드리의 수율 문제도 변수다. 삼성 3나노 공정은 초기 수율이 낮아 퀄컴 같은 고객이 TSMC로 돌아간 전례가 있다. 2나노에서 이를 만회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앤트로픽이 최종 파트너로 삼성을 택하기까지는 아직 여러 체크포인트가 남아 있다.
엔비디아는 손해를 볼까
이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데, 내 생각엔 단기적으로는 별로 안 볼 것 같다.
자체 칩이 완성된다 해도 당장 H200이나 B200 같은 엔비디아 GPU를 전부 대체하기는 어렵다. 애플이 M 시리즈 칩으로 맥을 채우면서도 아이폰 신경망 엔진에는 여전히 외부 IP를 쓰는 것처럼, 자체 칩과 범용 GPU는 공존한다. 앤트로픽이 자체 칩을 만든다고 내일부터 엔비디아 주문을 끊는 게 아니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구글, 오픈AI, 메타, 아마존, 애플에 이어 앤트로픽까지 모두 자체 칩을 향해 달리고 있다. 엔비디아가 AI 칩 시장을 영원히 독점하는 시나리오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5년 후엔 각 AI 랩이 추론용 칩을 자체 운영하고, 엔비디아 GPU는 학습(Training)에 집중하는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에게는 반전의 시즌
파운드리 사업으로만 보면, 삼성에게 지금은 꽤 중요한 시기다. 10년 넘게 TSMC에 밀린 2위 신세였는데, 엔비디아 독주에 위기감을 느낀 빅테크들이 자체 칩 생산처를 찾는 과정에서 삼성이 수혜를 입고 있다.
TSMC가 대만-미국 이중 생산 구조로 전환하는 와중에 삼성은 한국과 미국 텍사스에 이미 생산 거점을 갖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을 원하는 고객에게 매력적인 조건이다.
앤트로픽이 삼성 파운드리와 계약을 맺는 날, 그건 클로드라는 AI 서비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AI 하드웨어 생태계가 TSMC-엔비디아 중심에서 다극 체제로 전환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아직 계약서도 없는 협의 단계지만, 이 흐름만큼은 되돌리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