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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HBM4 AMD 낙점 — SK하이닉스 독주에 균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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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D CEO 리사 수(Lisa Su)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에게 직접 러브콜을 보냈다. 3월에 확정된 공식 발표는 간결했다. AMD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 MI455X'의 HBM4 우선 공급사로 삼성전자를 선정한다는 것. 업계 반응의 절반은 "그게 뭐?"였다. HBM 얘기는 워낙 잦아서 무감각해진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번 건 다르다. AI 메모리 시장 판세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지난 2년간 HBM은 SK하이닉스의 왕국이었다. HBM3E 사이클 정점에서 SK하이닉스가 가져간 시장 점유율은 62%였다. 마이크론이 21%로 치고 올라왔고, 삼성은 17%로 3위로 밀렸다. 메모리 반도체의 절대강자가 HBM에서 마이크론에도 뒤지는 상황을 당시 업계는 꽤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엔비디아 납품 지연, 수율 불안정 이슈가 연이어 터지면서 삼성의 HBM 전략이 근본부터 잘못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로부터 1년도 되지 않아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세계 최초 HBM4 양산에 성공한 삼성전자의 AI 메모리 칩 생산 현장

17%에서 30%로 — 1년 만의 반등

올해 2월 12일, 삼성전자는 HBM4 세계 최초 양산 출하를 선언했다. 공식 발표에 담긴 숫자부터 보면 인상적이다. 동작 속도 11.7Gbps. JEDEC 업계 표준인 8Gbps를 46% 초과하고, 엔비디아와 AMD가 요구하는 10Gbps 기준도 넘어선다. 10나노 6세대(1c DRAM) 공정 기반으로 이전 세대 대비 전력 효율은 20% 개선됐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가진 실질적 힘이 있다. SK하이닉스가 HBM3E에서 선점 효과를 누렸던 것처럼, HBM4의 첫 번째 주자가 되는 건 단순한 홍보 이상이다. 고객사들이 먼저 검증하고 대량 주문 관계를 맺으면 그게 생태계가 된다. 뒤에서 좇아가다가는 수율이 아무리 좋아도 물량을 가져오기가 어렵다.

1분기 기준 삼성의 HBM 점유율은 30% 수준으로 반등한 것으로 추정된다. HBM3E 시대의 17%에서 올라왔다. 완전한 역전은 아니지만, 방향이 바뀌었다는 건 분명하다.

AMD가 삼성을 선택한 이유

AMD MI455X에 탑재되는 HBM4는 16개, 총 용량 432GB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Vera Rubin에 예상되는 HBM4 용량(288GB)을 50%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AMD가 엔비디아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칩인데, 메모리에서부터 압도하겠다는 전략이다.

AMD 입장에서 이 칩에 들어갈 HBM4를 누구한테서 조달하느냐는 단순한 부품 선택이 아니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공급에 물량이 집중돼 있다. 엔비디아 Vera Rubin 플랫폼 HBM 공급의 약 70%를 SK하이닉스가 맡기로 돼 있는 상황에서 AMD가 SK하이닉스에서 충분한 물량을 받아내기는 어렵다. 자연스럽게 삼성으로 눈이 갔을 것이다.

그리고 삼성이 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면서 기술적 기준을 먼저 제시했다는 점이 AMD에게 신뢰를 줬다. 솔직히 이번 AMD 수주는 생각보다 전략적으로 깔끔하다. 삼성이 SK하이닉스의 구조적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삼성전자 HBM4를 탑재한 AMD MI455X AI 가속기 — 엔비디아 Vera Rubin에 맞서는 대항마

HBM4부터 달라지는 게임의 규칙

HBM3E까지는 메모리 칩을 잘 만들면 그만이었다. HBM4부터는 다르다. 베이스다이(base die)를 파운드리 공정으로 제작해야 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SK하이닉스는 자체 파운드리가 없어서 TSMC에 외주를 줘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다르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모두 보유한 IDM(종합반도체기업)이다. 베이스다이부터 HBM4 전체 스택까지 사내에서 통합 처리할 수 있다. 비용·납기·품질 조정을 내부에서 통제하는 것과 외부 파운드리 일정에 의존하는 건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삼성이 10년 넘게 쏟아부은 파운드리 투자가 HBM4 시대에 이르러서야 진짜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있다. 나도 이 방향이 맞다고 본다. 단순한 메모리 성능 경쟁이 아니라, 생산 구조 자체에서 삼성이 유리한 포지션으로 넘어왔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는 여전히 강하다

과장은 경계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여전히 엔비디아 Vera Rubin 플랫폼 HBM 공급의 약 70%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가 AI칩 시장을 지배하는 한,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 자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수율 안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이 "세계 최초 양산"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대규모 공급 단계에서의 수율 안정성은 별개 문제다. 일부 분석에서는 SK하이닉스가 HBM4에서도 수율 안정성에서 앞선다고 본다. HBM3E에서 쌓은 경험치는 무시할 수 없다.

SK하이닉스의 전체 HBM 비트 출력 점유율은 2025년 59%에서 2026년 50% 수준으로 하락이 예상된다. 그래도 과반이다. "균열이 시작됐다"는 표현이 맞다. 역전은 아직 다른 이야기다.

AI 메모리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2026년 하반기가 진짜 판가름

올해 하반기가 실질적인 승부처다. 삼성전자는 2분기 안에 HBM4E 첫 샘플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HBM4보다 한 단계 높은 세대다. 2027년부터는 고객사별 요구 사양에 맞춘 'Custom HBM' 순차 샘플링도 시작한다. 로드맵 상으로는 공격적이다.

변수는 파업이다. 삼성전자 5만 명 규모의 파업 위협이 현재진행형이다. 반도체 생산 라인에 실질적인 차질이 생기면 HBM4 납품 일정도 영향을 받는다. AMD와 엔비디아 양측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시점에 공급 차질이 나면 뼈아프다.

SK하이닉스 점유율이 50~60%로 떨어지고 삼성이 30%를 넘어서는 구도가 굳혀지면 AI 메모리 시장은 새 국면에 들어간다. HBM4E 공급이 본격화되는 올 연말과 내년 초가 진짜 분기점이라고 본다. 그 시점의 점유율 숫자가 2027년 HBM5 시대 판을 짠다.

HBM3E 시대에 마이크론에도 밀렸던 삼성이 HBM4 세계 최초 양산과 AMD 낙점을 동시에 이뤄낸 건 분명히 의미 있는 반전이다.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하기엔 SK하이닉스가 여전히 강하지만,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건 이제 부정하기 어렵다.